수족관 물탱크가 알려준, 경제를 보는 다른 눈
개장 전 수족관에서 큰 바닷물 수조를 들여다봤습니다. 지난주엔 멀쩡했는데, 오늘은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좋은 구석을 차지했고 작은 애들은 바위 뒤로 숨었고, 유리 닦던 새우는 안 보였습니다. 저는 성급히 약부터 넣지 않았습니다. 여기선 얽힌 관계가 전부니까요.
손님은 “물이 좀 탁하네, 새우가 어디 갔지?” 하고 작은 사고로 볼 수도 있습니다. 경제도 비슷하게, 위기나 격차나 환경 피해를 본체 옆의 고장처럼 때우곤 합니다. 근데 같은 문제가 자꾸 돌아오면, 수조 배치와 서로 대하는 방식이 문제를 계속 만들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누가 착하고 나쁜지부터 따지지 않고, 수조 안 ‘관계’를 그려봤습니다.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도 있고, 한쪽만 이득 보되 남은 크게 손해 안 보는 관계도 있고, 한쪽이 다른 쪽을 괴롭히는 관계도 있습니다. 경제도 이걸 기본 재료로 보자는 게 새 관점입니다. 반복되는 결과는 몇몇 악당보다 관계의 섞임에서 나옵니다.
큰 물고기가 먹이를 쥐면 작은 물고기들은 겁나서 바닥을 잘 안 뒤집니다. 그러면 이끼가 늘고 물이 답답해지고, 원래 얌전하던 애들도 예민해집니다. 해로운 관계가 환경을 바꿔서 해로움을 더 키우는 셈이죠. 이런 식이면 다양성이 줄고 수조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립니다. 안정적인 곳은 보통 서로 돕는 연결이 더 많습니다.
말싸움으로 끝내지 않으려고, 저는 수조의 ‘버티는 힘’을 가늠해봅니다. 서로 돕는 관계가 얼마나 많고 튼튼한지, 살아 있는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보고, 괴롭히는 관계가 얼마나 센지도 같이 봅니다. 돕는 쪽이 크면 흔들려도 회복하고, 괴롭힘이 크면 겉으론 멀쩡하다가도 작은 변화에 툭 무너질 수 있습니다. 경제도 누가 누구에게 기대는지 지도를 그려 비슷하게 점검할 수 있습니다.
마감할 때 저는 “경쟁을 없애자”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약간의 다툼은 생깁니다. 대신 목표가 바뀝니다. 돕는 관계가 곳곳에 퍼지게 만들고, 괴롭히는 관계는 커지기 전에 경계를 세우는 것. 경제도 사회의 규칙 안에 있고, 그 사회도 결국 자연의 한계 안에 있습니다. 오염과 상처는 뜬금없는 부작용이 아니라, 괴롭힘을 오래 보상하는 구조에서 새어 나오는 흔적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