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섬들의 빗물 전쟁, 그리고 우리 집 지붕 위 배터리 이야기
작은 섬 여러 개가 좁은 뱃길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섬마다 빗물을 모으는 물탱크가 하나씩 있고, 비가 많이 온 섬에서 싸게 물을 사서 가뭄인 섬에 비싸게 파는 게 주민들의 수입이에요. 배는 작고, 뱃길엔 방향 제한도 있고, 물탱크 주인들은 각자 알아서 실을 때와 내릴 때를 정해요. 아무도 서로 맞추지 않아요.
이 섬 이야기는 유럽 곳곳 지붕 위에 늘어나는 가정용 배터리와 똑같은 구조예요. 물탱크는 배터리, 뱃길은 전력선, 비는 남아도는 태양광 전기, 물탱크 주인은 배터리를 가진 가정이에요. 각 가정이 전기 가격만 보고 혼자 충전과 방전 시점을 정하면, 좁은 전력선에 모두가 동시에 몰리고 남는 전기는 그냥 사라져요. 눈에 안 보이지만 낭비가 어마어마하죠.
그래서 항구 관리소, 그러니까 전력망 운영자가 나서서 가격을 조절해 봐요. 아침엔 물값을 싸게, 오후엔 비싸게. 뱃길이 아침과 오후 딱 두 번이면 이게 정말 잘 먹혀요. 모두가 자연스럽게 싼 아침에 사서 비싼 오후에 팔고, 아무도 계획을 바꿀 이유가 없는 안정된 패턴이 생겨요.
근데 뱃길을 네 번, 다섯 번으로 늘리면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가격이 점점 오르니까 물탱크 주인마다 제일 싼 시간에 잔뜩 채우고 제일 비싼 마지막 시간까지 버텨요. 똑같은 섬의 두 주인이 서로 상대 자리를 빼앗으려 계속 계획을 바꾸고, 결국 누구도 안정되지 못해요. 배는 반쯤 빈 채로 다니고, 빗물은 부두에서 바다로 흘러요.
그럼 하루 종일 같은 가격으로 하면요? 안정은 돼요. 아무 시간이나 똑같으니까 굳이 바꿀 이유가 없거든요. 문제는 물을 안 옮겨도 상관없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버려요. 평화롭지만 빗물은 여전히 낭비돼요.
재밌는 건, 시간대가 많아질수록 상황이 더 나빠진다는 거예요. 일곱 번 뱃길이 있으면 공동체에 가장 좋은 건 짧은 구간 일곱 번을 돌려쓰는 건데, 각자 이익만 따지면 제일 싼 시간에 사서 제일 비싼 시간에 파는 긴 한 번만 써요. 유연성이 늘수록 이기적 행동의 낭비도 같이 커져요.
협력하면 되지 않을까요? 뱃길을 따라 거의 모든 물탱크 주인이 참여해야만 효과가 있어요. 한 명이라도 빠지면 물이 끝까지 흐르지 못하고, 빠진 사람은 참여할 이유가 없어요. 양동이 릴레이에서 한 사람이 빠지면 줄이 끊기는 것과 같아요.
똑똑한 가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어요. 같은 가격은 평화만 주고, 오르는 가격은 움직임은 만들지만 혼란도 같이 가져왔어요. 결국 좁은 뱃길에서 빗물 낭비를 줄이는 건 거의 모두가 손잡는 협력뿐이었어요. 지붕 위 배터리가 빠르게 늘고 있는 지금, 가격 신호만으로 전력망을 잘 쓸 수 있다는 믿음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