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바닥엔 아무것도 없는데, 이미 다 읽힌 밤
비가 막 그친 공동 마당이 아직 검었습니다. 젖은 발자국 한 줄은 쓰레기 보관함까지 갔다가 돌아왔고, 다른 한 줄은 어떤 문 앞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새벽 전에 누가 깨어 있었는지, 이 정도만 봐도 이웃은 슬슬 짐작하게 됩니다.
집 안의 작은 기록도 딱 이런 젖은 발자국하고 비슷합니다. 방이 따뜻해진 때, 불이 켜진 때, 문이 열리고 닫힌 때만 이어 봐도 누가 잤는지, 나갔다 왔는지, 밤새 뒤척였는지 얼추 읽힙니다. 자세한 영상이 없어도 남는 흔적만으로 사생활이 비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무서운 건 대단한 장비가 먼저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마당에서는 거의 누구나 발자국을 읽고, 신발 뒤축이 닳은 모양까지 아는 사람은 더 많이 맞힙니다. 집에서도 가족, 같이 사는 사람, 돌보는 사람은 작은 단서 하나만 더해도 그 흔적을 금방 누구의 일로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근데 흔적이 있다고 해서 무슨 일이었는지 딱 정해지진 않습니다. 같은 젖은 길도 잠이 안 와서였을 수 있고, 아픈 아이를 보느라 그랬을 수도 있고, 잠깐 바람 쐬러 나간 걸 수도 있습니다. 집 안 기록도 비슷해서, 한 줄의 선에 여러 이야기가 붙습니다. 그래도 한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돌면, 짐작이 증거처럼 굳어집니다.
그 기록이 집 밖으로 안 나간다고 안심할 일도 아닙니다. 집 안에서 누군가가 다시 보고, 꺼내 보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거기서부터 상처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나쁜 마음이 없어도 그렇습니다. 읽는 사람은 해석하고, 다른 사람은 그 해석 속에서 지내게 되니까요.
점심쯤 되면 마당 바닥은 말라서 발자국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아침에 사람들이 붙여 놓은 이야기는 남습니다. 새삼 무서운 건 기계가 더 똑똑해졌다는 게 아닙니다. 아주 단순한 집 안 흔적도, 보통 사람들이 읽고 따지고 믿어 버리면 서로를 보는 눈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