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광장이 미끄러운 이유
새로 단장한 광장 입구에 섰습니다. 간판에는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라고 적혀 있고, 바닥은 거울처럼 매끄럽게 빛났죠. 그런데 아침 출근길을 지켜보니 이상한 점이 보였어요.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은 성큼성큼 지나가는데, 구두를 신거나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들은 미끄러운 바닥을 보고 발길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중립적'인 디자인이 꼭 공정한 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죠.
설계 도면을 다시 보니 두 가지 원칙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똑같은 대우'를 위해 모든 바닥에 똑같은 타일을 까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똑같은 결과'를 위해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겁니다. 매끄러운 타일로 바닥을 통일하면 첫 번째 규칙은 지키지만, 미끄러움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을 막아버리니 두 번째 목표는 실패하게 됩니다.
표지판을 없애면 해결될까 싶었지만 착각이었습니다. '노인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없어도, 미끄러운 타일 자체가 이미 그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겉으로는 아무런 차별 문구가 없어 보이지만, 미끄러운 바닥이라는 물리적 환경 자체가 특정 사람들을 걸러내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된 셈입니다.
더 큰 문제는 데이터였습니다. 입구 센서는 들어온 사람 수만 세는데, 지금은 운동화 신은 사람들만 들어오니까요. 이 데이터만 믿으면 "이 동네는 스포츠를 좋아하니 체육관을 짓자"는 엉뚱한 결론이 나옵니다. 잘못된 설계가 낳은 편향된 데이터가 결국 다른 주민들을 영영 쫓아내는 근거가 되어버리는 거죠.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방식을 바꿨습니다. 하나의 완벽한 자재를 찾는 대신, 상황에 맞춰 규칙을 섞기로 했죠. 보안 검색대는 누구나 똑같이 통과하게 하되(동등한 대우), 출입문은 힘이 약한 사람도 열 수 있게 자동문으로 바꾸는 식(동등한 결과)입니다. 단순한 통일이 아니라, 목적에 맞는 적극적인 조정을 선택한 겁니다.
거친 돌길과 매끄러운 길, 경사로가 어우러진 광장이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이제야 유모차를 끈 부모님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채웁니다. 진정한 공정함이란 모두에게 똑같은 신발을 신으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어떤 신발을 신었든 무사히 건너갈 수 있게 길을 닦는 일이니까요.